브랜드 경영 케이스 스터디

브랜드 흥망성쇠 (14) 갭 (GAP)의 몰락과 부활

fresh-info 2025. 5. 1. 00:25

 

1. 한때 모든 미국인의 브랜드였던 GAP의 몰락

갭(GAP)은 1990년대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의류 브랜드였다. ‘깔끔한 기본 스타일’이라는 정체성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만들어냈고, 미국 중산층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특히 고급도 저가도 아닌 ‘합리적 가격에 기본을 잘 만드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로 유니클로보다 먼저 글로벌 SPA(제조·유통 일괄) 모델을 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GAP의 브랜드 감도는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트렌드에 둔감한 디자인, 애매한 가격 포지션, 소비자의 정체성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브랜드 전략이 겹치며 GAP은 ‘촌스럽고 식상한 브랜드’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패션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 패스트패션의 급부상, 소비자 선택 기준의 감성적 전환 속에서 GAP은 빠르게 시대에 뒤처진 브랜드로 밀려났다. 매장 수는 줄었고, 매출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2. 구조조정의 시작 – 버리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GAP의 부활 시도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서 시작되었다. 2010년대 후반부터 본사는 비효율 매장을 대거 정리하고, 매출 중심이 아닌 브랜드 정체성 회복을 우선순위에 두기 시작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 유통 채널이 아닌,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전략을 추진했고, 동시에 온라인 채널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특히 전자상거래 플랫폼 개선과 모바일 사용자 경험 개선이 급속도로 이뤄지며 디지털 세대와의 접점을 다시 만들었다.

 

이와 함께 ‘갭 키즈’, ‘갭 바디’ 등 하위 브랜드군에 대한 사업성 평가도 철저히 진행됐다. 수익성과 브랜드 파워가 약한 라인은 과감히 정리하고, 강점이 명확한 영역에만 리소스를 집중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과거 성공한 광고 캠페인을 재해석해 Z세대와 밀레니얼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시도도 병행됐다. 이 구조조정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브랜드를 가볍게 만들어 새롭게 달릴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었다.


3. 감성 회복을 위한 전략 – 유산의 현대적 재해석

GAP은 과거의 강점이던 ‘기본, 단정함, 심플함’을 다시 끌어오되, 그것을 2020년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집중했다. 로고를 중심으로 한 복고풍 캠페인, 과거 광고를 재현한 SNS 콘텐츠, 90년대 스타일을 차용한 아이템의 한정 판매 등은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젊은 세대에겐 신선함을 동시에 제공하는 전략이었다. 특히 유행을 좇기보다는 ‘가치 소비’와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윤리적 마케팅이 GAP의 새로운 무기로 부상했다.

 

이와 더불어 유명 인플루언서 및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으로 브랜드 감도를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고, SNS 기반 사용자 참여형 캠페인도 브랜드에 활기를 더했다. 기본템 중심의 무난한 제품군은, 이젠 ‘꾸안꾸’라는 트렌드와 결합되며 다시금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GAP은 더 이상 ‘멋없는 브랜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브랜드로 메시지를 재구성하며 소비자와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4. GAP이 남긴 교훈 – 무너진 브랜드도 다시 세울 수 있다

GAP의 회복은 완전한 회생이라기보다는, 브랜드 정체성을 복원하고 미래 방향성을 다시 정립한 데 그 의의가 있다. 실패한 브랜드라도 핵심 가치를 지키고,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다시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다. GAP은 트렌디함보다는 일관성과 진정성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오히려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 사례는 브랜드 리브랜딩을 고민하는 기업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무엇을 새롭게 만들 것이냐보다, 기존에 가진 것을 어떻게 새롭게 보이게 할 것인가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GAP은 버릴 것은 버리고, 남겨야 할 것을 정리했으며, 결국 브랜드의 뼈대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지 제품이 아닌, ‘태도’의 변화로서 소비자에게 신뢰를 회복한 사례이며, 브랜드 부활이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