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하이락의 등장과 실패 – 도시락 시장의 조기 진입자
2000년대 초반,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당시 소비자에게 도시락은 ‘급할 때 먹는 저렴한 음식’의 이미지가 강했고, 맛이나 퀄리티보다는 가격 중심으로 선택되었다. 이때 등장한 브랜드가 하이락이었다. 하이락은 ‘건강한 도시락’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일찍이 프리미엄 전략을 시도했다. 채소 중심의 메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용기 디자인, 가볍고 영양 밸런스가 맞는 구성 등은 분명 시대를 앞선 시도였다.
하지만 당시 소비자 인식은 여전히 ‘싸고 배부르면 된다’에 머물러 있었고, 하이락의 고가 전략은 시장과 어긋났다. 유통망 역시 제한적이었고, 대형 편의점과의 협업이 아닌 독립 유통망을 유지하면서 매장 접근성이 떨어졌다. 브랜드 인지도 확보에 실패했고, 건강함이라는 장점이 오히려 ‘부족한 양’, ‘비싼 가격’이라는 단점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과적으로 하이락은 도시락 시장을 개척하고도 살아남지 못했다.
2. CU·GS25의 도시락 전략 – 트렌드 반영과 상품성 개선
하이락의 실패 이후, 편의점 도시락 시장은 CU와 GS25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도시락을 단순한 식사 대용이 아닌, 브랜드 핵심 상품군으로 설정하고 집중 투자에 나섰다. 맛과 양, 가격의 균형을 맞춘 제품 개발은 물론, 연예인 이름을 딴 도시락, 지역 맛집과의 콜라보 제품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단순히 도시락을 파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로 소비하게 만든 전략이었다.
GS25는 ‘혜자 도시락’ 시리즈로 화제를 모았고, CU는 ‘정찬 느낌’의 도시락을 내세워 품질 이미지 개선에 성공했다. 두 브랜드 모두 SNS 마케팅, 먹방 콘텐츠 연계, 편의성 중심의 패키지 개선 등을 통해 도시락을 일상식의 대안으로 자리매김시켰다. 동시에 유통망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 접근성을 높였고, 가성비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맛과 구성에서의 차별화를 이루며 도시락 소비층을 확대했다.
3. 소비자의 인식 변화 – 도시락은 가볍고 빠르며 맛있어야 한다
도시락 소비에 대한 인식은 201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인 가구의 증가, 혼밥 문화의 확산, 식당 대비 높은 가격 민감도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리며 도시락은 ‘저렴한 대안’이 아니라, 주력 식사 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하이락이 시도했던 ‘건강한 도시락’의 콘셉트는 오히려 CU나 GS25가 나중에 더 잘 구현해냈다. 메뉴 구성에 영양을 고려하고, 포만감을 주되 칼로리를 낮추는 방향으로 개선된 것이다.
여기에 기술력의 발전도 영향을 끼쳤다. 냉장 유지 기술과 전자레인지 조리 표준화는 제품 품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게 했고, 이는 도시락의 ‘맛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또한 고객의 피드백을 실시간 반영하는 구조를 통해 상품 개발 속도도 빨라졌다. 도시락은 더 이상 ‘없으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찾아 먹는 선택지’가 되었고, 이는 브랜드 충성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4. 부활의 본질 – 브랜드가 아닌 시스템이 만든 경쟁력
하이락은 좋은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반면 CU와 GS25는 브랜드 전략보다는 유통 시스템, 소비자 피드백 루프, 빠른 상품 개발 사이클이라는 운영 구조의 경쟁력으로 도시락 시장을 지배했다. 브랜드는 후속 단계였다. 도시락이라는 제품을 ‘시장에 맞게 생산하고 빠르게 유통하며, 끊임없이 개선하는 구조’가 먼저 마련되었기에,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신뢰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도시락 시장뿐 아니라 모든 소비재 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아무리 좋은 철학이나 콘셉트를 가졌더라도, 시장의 타이밍, 유통 경로, 가격 전략, 고객 접점 없이 브랜드는 살아남기 어렵다. 하이락은 선구자였지만, 준비되지 않은 선구자였다. 반면 CU와 GS25는 기존 시장의 틈을 읽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부활의 열쇠는 결국 좋은 콘셉트가 아니라, 시장과 연결된 실행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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